모로코 여행 후기 1 : 모로코의 도로

모로코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단연 교통환경이다. 

처음 카사블랑카에 내려 유심침을 사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8차선은 되보이는 대로 중앙선에 서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무단횡단을 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모로코에서도 저 여자는 특이한 거겠지 생각했다. 정확히 5분 후에 나도 중앙선에 서있었다.

모로코의 도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1. 한국의 도로를 떠올린다. 규모는 상관없지만 강남대로 같은 큰 도로면 더 좋다.

2. 머릿속의 도로에서 신호등을 떼낸다.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등은 물론이고, 교차로의 차량 신호등도 필요없다.

3. 이제 차선을 지운다. 중앙선은 희미하게 남아있을 때도 있다는 점은 참고한다. 또 도로에 있는 속도 제한이나 진행방향 안내표시도 물론 지운다.

4. 도로 표지판도 뗀다. 초록색 배경으로 1km 앞에 예술의전당이 있다느니 하는 그것 말이다.

5. 마지막으로 도로 위에 택시와 오토바이를 전체 차량의 절반 정도로 채운다. 이들 모두는 자신이 무엇을 발견했다는 신호만으로 경적을 울려댈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은 나에게 생존을 요구했다. 내가 아스팔트 포장에 발을 딛으려는 순간부터 다시 인도로 올라오려는 순간까지, 매 순간이 생존에 직결되었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면서 가거나, 가로질러가는 행인 혹은 멋진 건물을 구경하면서 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마치 숲에서 오늘을 연명하기 위해 사냥을 나서며 매를 경계하는 다람쥐와 같은 순간인 것이다. 

이런 경험은 꽤 만족스러웠다. 애초에 이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내 직업적 일을 포함한 모든 번뇌?에서 잠시나마 떨어지기 위함이었으니, 그런 고차원적인 것에 신경쓰지 않고 가장 야생적인 생존 경쟁에 집중하는 것은 바라던 바였다.


여기에 더해 지금 나에게 떠오른 하나의 생각은, 한국에서보다 여기서 더 운전하기 편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도로를 벗어나면 안된다. 사람이나 다른 차를 치면 안된다.' 딱 2가지 규칙으로만 돌아가는 이 도로를 감당하는 것은 한국의 그 어떤 운전자라도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자유?가 최소한 나에겐 더 유리하지 않나 싶다.

 나는 운전을 못한다는 걸 자각하고 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운전하는 차량의 크기에 대한 공간지각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혹시나 인명 피해를 입혔을 때의 책임감에 압도된 것이 크다. 그런데 그 부담감은 생각해보니 다음과 같은 관계도처럼 느껴졌다. '사람을 치면 안된다. 그러러면 수많은 교통규칙을 준수해야한다. 왜냐면 모든 운전자들이 그 규칙을 따르고, 그 규칙을 따르는 한 안전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나는 기본적인 전방주시와 속도 제어 등 해야 하는 일이 굉장히 많은데, 그 와중에 도로 위에서 하기로 정한 국가적 약속까지 모두 지키리라는 자기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로코는 어떤가. '사람을 치면 안된다.' 끝.


나로썬 이렇게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최종 목적만을 남긴 채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아무 제한 없이 열어둔 모로코 방식이 더 해봄직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차선이 없으니 깜빡이를 킬 필요 없이 그냥 빈 자리로 들어가면 된다. 보행자가 지나갈 것 같으면 기다려주면 된다(보행자도 차가 없을 때 지나가면 된다).


모로코는 내가 겪었던 그 어떤 환경과도 닮은 점이 없는 새로운 환경이다. 그리고 나는 그 환경이 썩 마음에 드는 중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