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을 못하는 게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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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예시처럼 대화하던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는 게임 디자이너였다.


글을 쓰는 지금은 일요일로 넘어가는 토요일 밤이다.

금요일에 재택근무 중 해결되지 않는 기술상 문제가 있어 회사로 오랜만에 출근했는데, 사수가 나를 불러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지는 나와 함께 일하는/했던 사람들이 '나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불편하다'는 피드백을 다수 전한다는 것.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짝 멍해졌다. 나는 완벽한 게임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문제없이 업무를 쭉쭉 진행하면서 자신감이 붙어, 나 정도면 연차에 비해서 꽤 좋은 퍼포먼스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래서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자기평가에서도 자신있게 어필을 했더랬다.

그런데 '나와 일하는게 불편하고 어렵다'니. 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그냥 같이 일하기가 불편하다는 피드백은 정말이지 내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것이 아니었을까.

차라리 내가 업무능력이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면, 공부를 더 한다던가 레퍼런스를 더 알아본다던가 하는 노력으로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그냥 나랑 일하기 싫다는 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걸까?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재택근무를 자주 하는 요사이는 슬랙의 DM이나 단체 메시지 방을 통한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이 잦아진 상태인데, 이 때 내 말투나 대화 시의 온도?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내가 뭔가 화가 나 있다던가, 너무 차갑다던가, 싸가지가 없어보이게 말한다던가 하는 뉘앙스일 것이다. 물론 이렇게 직접적인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사실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이런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어떠 미사여구도 없이, 이모지도 없이, 그 흔한 ~나 !도 없이 전달해야하는 내용만 담긴 텍스트. 

상대방이 내가 화난건 아닐까 걱정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해해주겠지- 하면서 금새 잊었었다.

실제로는 이해해주지 않았지만.

내가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이런 텍스트 대화 스타일을 유지했던건 다음의 이유 때문이었다.

  1. 최대한 담백하게 대화를 하고 싶었다.
  2. 최대한 효율적으로 대화를 하고 싶었다. 빠르게 서로 공유해야될 내용을 공유하고 각자의 작업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3. 이게 프로페셔널한 것이라고 믿었다.
  4. 실제 내 성격이, 텍스트로 대화할 때 미사여구를 붙이는걸 어색해한다(간지럽다).
하지만 이 스타일은, 실제로 내가 받은 피드백으로 미루어보아
  1. 담백한게 아니라 싸가지가 없었다. 정나미가 없었다고 해야되나.
  2. 더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친절하고 사근사근하게 말하는 것이, 말을 빙빙 돌려서 말한다는건 아니니까.
  3. 진짜 프로라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좋은 관계가 되는 것에도 신경썼어야 했다.
한 명만이 이런 피드백을 했었다면, 나는 그저 그 사람과 나의 대화 스타일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나와 대화 스타일이 정반대인 한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분은, 두 번 정도 나에게 직접 피드백을 했었다. 한번은 혹시 본인이 나한테 잘못한 게 있어서 본인을 싫어하는거냐고, 한번은 왜이렇게 사람 기분나쁘게 말을 하냐고.

하지만 다수가 나에게 비슷한 피드백을 한다면, 그건 내 문제가 틀림없다. 그리고 누구보다 완벽한 게임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나는, 이 문제를 빠르게 개선하고 싶다. 게임 디자이너는 구상한 기능의 구현을 위해 모든 다른 직군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절반인(나머지 절반은 사양 작성인) 사람이니까.

그래서, 이제는 슬랙으로 DM을 주고받을 때 말투를 더 친절하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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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하면서 느낀건데, 두 줄 연속 ! 를 붙이는 게 너무너무 어렵다. 그냥 심리적 거부감이 너무 크다. 왜일까... 나도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던걸까?

아직도 이런 대화가 가식적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그런게 뭐가 중요할까. 이렇게 해서 내가 더 좋은 게임 디자이너로, 더 좋은 동료로 평가받는다면 그렇게 해야지... 이게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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